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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적고, 꼼꼼히 기록했는데… 왜 통장은 그대로일까요?

요즘 가계부 안 쓰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앱도 잘 나오고, 카드 쓰면 자동으로 쫙쫙 정리되고, 월초마다 “이번 달은 진짜 아껴보자” 다짐도 하게 됩니다. 저도 한때는 색깔별로 항목 나눠서 적고, 지출 그래프 보면서 혼자 뿌듯해하던 사람이었다. 근데 … 이상하게도 가계부를 쓰기 전이랑 후랑, 잔고 차이가 거의 없는 겁니다. 월말만 되면 늘 같은 말, “어? 뭐지?” 이 상태. 그래서 한동안 가계부를 안 고치고, 저 자신을 좀 들여다봤다. 그러다 보니까 아, 이래서 돈이 안 모였구나 싶은 포인트들이 하나씩 보입니다. 오늘은 그 얘기, 좀 솔직하게 풀어보려합니다.

 

가계부관리

가계부를 ‘기록’으로만 쓰고 있었던 이유

가계부를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커피 얼마, 배달 얼마, 택시 얼마… 이렇게 하루 지출을 적어두면 괜히 뿌듯해지는 느낌 있잖습니까. “오늘도 나 열심히 관리했다” 이런 자기 위로 같은 거 말입니다.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건 관리가 아니라 그냥 기록입니다. 어디서 돈이 새는지, 비슷한 지출이 반복되는지, 다음 달엔 뭘 줄여야 할지 전혀 안 봤습니다.

가계부를 쓰고 나서 다시 안 보는 상태. 이게 제일 문제였다. 적는 순간만 뿌듯하고, 월말에 한 번 훑어보거나 아예 안 보고 넘기는 달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가계부는 점점 ‘지출 일기장’이 됐고, 통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은 했지만, 판단도 수정도 없으니까 결과가 달라질 리가 없었던 거다.

소액지출이 제일 무서웠던 진짜 이유

3천 원, 5천 원, 만 원도 안 되는 돈. 솔직히 말해서 쓸 때는 거의 고민 안 하게 된다. “이 정도는 괜찮지” 하면서요. 저도 그랬다. 문제는 가계부로 한 달을 쭉 보면, 이런 소액지출이 제일 많다는 거였습니다. 하나하나는 귀여운데, 모아놓으면 전혀 안 귀여운 금액이 되더랍니다.

소액지출 항목 1회 금액 월 누적 금액
카페 커피 4,500원 약 90,000원
편의점 간식 5,000원 약 70,000원
택시 8,000원 약 120,000원

더 무서웠던 건, 이 소액지출에 대해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큰돈 쓸 땐 벌벌 떨면서, 작은 돈은 자동결제처럼 나가고 있었다. 가계부에 적긴 했지만 “아깝다”는 느낌이 없으니 행동도 그대로였다.

계획 없는 가계부의 치명적인 함정

가계부를 쓰기 전에 예산부터 세우는 사람,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저도 늘 “일단 쓰고, 나중에 보자” 스타일이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되면 가계부는 결과표가 됩니다. 이미 다 쓰고 난 다음에 “이번 달 왜 이렇게 많이 썼지?” 이 말만 남습니다.

  • 예산이 없으니 기준이 없음
  • 기준이 없으니 반성만 남음
  • 반성만 있고 행동 변화는 없음

시험 끝나고 오답노트 안 보는 거랑 똑같습니다. “아 틀렸네”는 아는데, 다음 시험 준비는 안 하는 느낌. 계획 없는 가계부는 그렇게 계속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감정 소비가 가계부에 안 보였던 순간들

이 부분은 솔직히 좀 찔렸습니다. 스트레스받으면 배달, 피곤하면 택시, 기분 꿀꿀하면 쇼핑. 다들 한 번쯤은 이 패턴 겪어봤을 겁니다. 근데 가계부에는 그냥 ‘식비’, ‘교통비’, ‘생활비’ 이렇게만 적혀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왜 썼는지는 안 보이고, 얼마 썼는지만 남는 구조였던 거였다.

이러다 보니까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이 돈을 쓰게 됩니다. 감정이 원인인데, 가계부에서는 그 감정이 통째로 빠져 있으니 문제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나 왜 이렇게 배달을 자주 시키지?’가 아니라, 그냥 ‘이번 달 식비 초과’로 끝나버리는 느낌이었달까.

저축을 맨 마지막에 둔 선택의 결과

월급 받으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뭐였냐면, 카드값 확인이랑 이번 달 쓸 돈 계산이었어요. 저축은 늘 그다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으면’ 하는 거였죠. 근데 남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가계부를 아무리 열심히 써도, 저축이 맨 마지막 순서에 있으면 돈은 진짜 안 모입니다.

돈 흐름 순서 결과
월급 → 지출 → 저축 거의 안 남음
월급 → 저축 → 지출 강제로 남음

이걸 깨닫고 나니까 좀 멍해집니다. 가계부는 저축을 지키기 위한 도구여야 하는데, 저는 오히려 저축을 포기하기 위한 핑계로 쓰고 있었던 겁니다.

가계부를 나를 혼내는 도구로 썼을 때

가계부를 보다 보면 자꾸 스스로를 혼내게 됩니다. “왜 또 썼어”, “또 배달이네”, “아 진짜 답 없다…”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느낌.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가계부 여는 게 싫어졌어요. 쓰면 쓸수록 기분만 안 좋아집니다.

  • 가계부를 열 때마다 스트레스
  • 결국 기록 중단
  • 다시 원점으로 복귀

가계부는 원래 흐름을 보는 도구인데, 저는 저를 통제하는 도구로 써버렸습니다. 그러니 오래갈 리가 없었던 겁니다.

가계부를 쓰면 원래 돈이 모여야 하는 거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실 가계부는 돈을 모아주는 도구라기보단 돈의 흐름을 보여주는 도구에 더 가깝습니다. 흐름을 보고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결과는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자동 가계부 앱을 쓰면 더 효과적이지 않나?

편하긴 한데, 너무 자동화되면 오히려 감정이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숫자는 잘 정리되는데 “아깝다”는 느낌이 안 들면 소비 습관은 잘 안 바뀌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소액지출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 거 아닌가?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 달로 모이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소액지출은 가계부에서 꼭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산부터 짜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기준이 없으면 잘했는지, 넘쳤는지 판단이 안 된다. 예산은 통제라기보단 기준선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니까 조금 편해졌습니다.

저축을 먼저 하면 생활이 너무 빡빡해지지 않나?

처음엔 좀 답답했습니다. 근데 남은 돈으로 생활하는 구조에 익숙해지니까,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다. 금액을 무리하지 않게 잡는 게 중요했습니다.

가계부 쓰다가 자꾸 포기하게 되는데 정상인가?

진짜 정상입니다. 저도 여러 번 그랬습니다. 너무 완벽하게 쓰려고 하면 오래 못 갔다. 흐름만 보는 정도로만 접근해도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가계부를 쓰면 당연히 돈이 모일 줄 알았는데, 현실은 좀 달랐습니다. 저도 한동안 “왜 나만 이러지?” 하면서 괜히 자책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하나씩 뜯어보니까, 가계부가 문제라기보단 제가 가계부를 대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기록만 하고 다시 안 보고, 계획 없이 쓰고, 감정은 숨기고, 저축은 맨 뒤로 미뤄두고… 이러면 아무리 예쁜 가계부라도 통장이 바뀔 리가 없었다. 그래도 가계부 덕분에 제 소비 성격을 알게 된 건 확실했다. “아, 나는 이런 상황에서 돈을 쓰는 사람이구나” 이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시작은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도 가계부는 쓰는데 돈이 안 모이고 있다면, 오늘 이야기 중 하나쯤은 분명히 겹치는 게 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다음 단계로 가는 힌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자책 말고, 그냥 흐름 한 번만 같이 다시 보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