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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얼굴 뒤에 숨은 악의를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불쌍함을 무기로 타인의 동정심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마사 스타우트 교수가 만난 재소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사람들이 나를 안 됐다고 여기는 순간"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동정을 도구로 삼는 악인들의 심리와 대응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정심을 무기로 삼는 사람들의 정체
동정심을 이용하는 악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존심이나 자존감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불쌍한 척을 할 때 부끄러움이나 민망함을 느낍니다. 교통 단속을 받을 때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하면서도 옆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동정 연극형 소시오패스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불법 유턴 단속 상황에서 자신의 인생 전체가 파탄 났다는 이야기로 경찰을 설득한 후, 오히려 그 방법을 자랑스럽게 가르치려 듭니다. 자존감이나 명예는 그들에게 망치나 톱과 같은 도구일 뿐입니다. 필요할 때 꺼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것이죠.
인간은 동정심을 느끼면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의무감을 갖게 되고, 그 의무감은 공감으로 직결됩니다. 이들은 바로 이 심리적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파악하고 이용합니다. 자신의 불쌍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 도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언증과 동정연극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허언증이 있는 사람은 관심받고 싶어서 자신의 자존감을 살리려 합니다. 반면 동정연극에 심취한 악인들은 자존감과 무관하게 오직 자신이 얻고 싶은 결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받을 것의 양을 늘려가는 데 집중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불쌍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의 차이점
많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현재 학계의 주류 의견은 개념적으로 굳이 분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대중적 이해를 위해 구분하자면, 사이코패스는 선천적 요인이 강하고, 소시오패스는 양육 환경과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소시오패스 비율은 흥미롭습니다. 북미나 유럽에서는 약 4% 정도로 추정되지만, 한국에서 PCL-R(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을 적용하면 3분의 1 정도가 감소하여 약 0.3%에서 1% 정도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는 측정 도구의 문화적 차이 때문일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중성과 가식성, 남을 잘 속이는 특질이 영국보다 3배,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납니다.
사이코패스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입니다. 음식, 성, 은신처 같은 기본적 욕구에 초점을 맞추며, "지 혼자 먹고 있더라"처럼 원시적 수준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가스라이팅에 능합니다. "왜 네가 그렇게 들었어, 농담이었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기야" 같은 조종적 언어를 사용하며, 불우한 가족사를 이야기해 동정과 연민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냅니다.
영화 속 캐릭터로 비교하면, 사이코패스의 대표는 조커입니다. 충동적이고 감정 조절이 안 되며 티가 납니다. 반면 소시오패스의 대표는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귀엽고 불쌍하고 보호해주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표정 연기에 능합니다. 둘 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지만, 소시오패스는 남의 공감을 이용하는 능력이 발달해 있어 더 악의적일 수 있습니다.
동정 연극형 악인과의 관계 단절 방법
동정연극형 악인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조금씩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끊어내야 합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곳에서 험담을 하며 자신의 불쌍함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험담은 오히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험담하면 그 사람이 관계가 나쁘다고 생각되지, 불쌍하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험담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불쌍해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간질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따라서 관계를 끊어도 나에 대한 험담을 많이 할 가능성이 높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가족처럼 끊을 수 없는 혈연이라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이 경우 느슨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같이 밥을 먹지 않는다", "돈거래는 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함께하지 않는다"처럼 확실한 기준을 두고 공유하지 않는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특히 사람을 섞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는 시도는 파국적 결과를 만들기 쉽습니다.
교묘하게 흔드는 악인에게는 반문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늘 망설이더라"고 하면 "너는 착하지도 않잖아", "생각을 많이 하는 인간들은 앞뒤를 재더라"라고 하면 "너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잖아"라고 되받아쳐야 합니다.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시나리오에 균열이 생기기 쉽습니다.
외로움을 견디고 진짜 관계를 만드는 법
소시오패스적인 사람들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의 공통점은 외로웠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나쁜 관계로 도피하는 것입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은 박사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나쁜 관계로 도피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친구라면 모든 것을 다 공유하고 함께 해야 한다는 우정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외로움을 잘 달래는 방법은 느슨하지만 넓은 관계입니다. 1년에 10번 만나는 친구, 2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 모두 만났을 때 즐겁고 행복한 정도는 비슷합니다. 등산을 함께 갈 때 즐거운 친구, 맥주를 같이 마실 때 좋은 친구, 노래방을 함께 가면 행복한 친구처럼 특정 활동을 통해 연결된 느슨한 관계가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문화 예술 취미 레저가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 작은 감탄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작년까지 못 쳤던 아리랑을 올해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세계 최고의 연주자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안 되는 실력이지만 내 손끝으로 연주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감탄합니다. 이런 "나 스스로 하는 감탄"이 전혀 없는 삶은 소시오패스에게 이용당할 여지를 만들어 놓는 삶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에게 "이 양심도 없는 놈아"라는 말을 잘합니다. 강아지에게 밥을 주기 위해 중요한 회의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행동을 했을 때도, "내가 정말 강아지를 사랑해서인지, 이웃의 평판을 의식해서인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고민합니다. 이런 번민이 양심의 증거입니다. 반면 악인은 번민하지 않습니다. 행동은 같을 수 있어도 내면의 동기와 과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불쌍한 척하는 악인들을 분별하는 것은 타인을 함부로 진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죄책감과 연민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살피고,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느슨하지만 진실한 관계를 넓히고, 나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악의적 이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양심은 번민하는 마음에서 자라나며, 그 번민을 존중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관계의 시작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ioK8XdvSPn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