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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김정은 박사는 이 간극의 원인을 '창조력'의 부재에서 찾습니다. 그는 창조를 타고난 천재의 전유물이 아닌, 교육과 훈련으로 계발 가능한 능력으로 정의하며, 독일 바우하우스의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합니다. 이 글은 창조적 사고의 본질을 '시각적 사고'와 '편집'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재미와 플로우가 어떻게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지 탐구합니다.

 

 

근면성실만이 답은 아니다

시각적 사고: 언어를 넘어선 창조의 원천

창조의 비밀은 시각적 사고에 있습니다. 김정은 박사는 인간이 그림으로 약 70%, 문장으로 약 30%를 사고한다고 설명하며, 시각적 사고와 언어적 사고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언어적 사고는 논리적이고 문제 해결에 특화되어 있지만, 시각적 사고는 사고를 치고 경계를 넘어서는 창조의 영역입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과 윌리엄 제임스의 의식의 흐름은 모두 시각적 사고가 얼마나 빠르고 자유롭게 날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천재와 미친놈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천재는 시각적 사고로 멀리 날아갔다가 언어적 사고로 돌아와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미친놈은 끝까지 가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는 무의식적 억압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의 문제입니다. 바우하우스는 이 시각적 사고를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위해 예술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파울 클레의 '조형적 사고'는 점, 선, 면, 색, 형태 같은 시각적 요소를 분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창조적 사고를 교육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언어적 사고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입시 교육은 시키는 대로 잘하는 사람을 키우기 위한 구조이며, 예술 교육은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창조력은 제한되고, 사고 치는 능력은 억압됩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입니다. 음악, 미술, 체육, 여행 같은 시각적 경험을 통해 사고가 활성화되고, 멍하게 있을 때 생각이 가장 빠르게 날아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창조력을 키우기 위한 환경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 주장은 다소 과격하고 단정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창조성이 억압되는 구조는 명백히 존재하며, 시각적 사고를 활성화하는 훈련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모든 문제를 교육 시스템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균형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편집의 힘: 창조는 새로운 조합이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정은 박사는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편집"이라고 정의하며, 이를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했습니다. 인간은 생전 두 번도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리프리젠테이션(Re-presentation), 즉 한 번 본 것을 머릿속에서 다시 보여주는 것이 생각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조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편집의 단위와 차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은 자극, 정보, 지식의 3단계로 구성됩니다. 자극 중 중요한 것만 받아들여 정보가 되고,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엮어 지식이 됩니다. 새로운 지식은 정보들을 다르게 연결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바우하우스를 건축학교나 디자인학교가 아닌 창조학교로 재해석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정보들을 창조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재배치한 것입니다.
영화의 쿨레쇼프 효과는 편집의 힘을 잘 보여줍니다. 스프 사진 다음에 나온 얼굴은 배고파 보이고, 죽은 여자아이 사진 다음에 나온 같은 얼굴은 슬퍼 보입니다. 관객은 두 장면 사이의 빈틈을 적극적으로 메우며, 이것이 바로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편집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케이팝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래냐 춤이냐는 낡은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음악, 춤, 무대, 유튜브, SNS,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모두 포함한 종합예술(Gesamtkunstwerk)로 보면 그 성공이 명확히 이해됩니다.
편집을 잘못하면 세상을 왜곡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 떨어진 폭탄 위치를 보고 영국 정부는 간첩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실제로는 우연이었습니다. 선을 잘못 긋자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편집 능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핵심 역량입니다. 사용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 논리는 강력하지만 현실의 복잡성을 모두 담기에는 다소 단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편집이 창조의 핵심이라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며, 개인이 실천 가능한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재미와 플로우: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정서

인생이 재미없으면 창조는 불가능합니다.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Flow) 개념은 재미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플로우는 실력과 난도가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경험하는 몰입 상태입니다. 실력은 높은데 난도가 낮으면 지루하고, 실력은 낮은데 난이도가 높으면 불안합니다. 한국의 노인들은 지루함에, 젊은이들은 불안함에 시달립니다. 그 이유는 주체적 관심이 없고,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재미는 의식의 흐름과 같은 개념입니다. 재미있으면 생각이 날아가고, 생각이 날아가면 창조가 일어납니다. 어린아이들이 창조적인 이유는 재미있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빗자루를 청소 도구로만 보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빗자루를 자루로 바꿔 날아갑니다. 맥락을 바꾸는 능력이 바로 창조입니다. 동물고스톱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동물이 다섯 마리 나오면 돈을 더 주는 새로운 룰을 만들자 팔광 속 달의 계수나무와 토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김정은 박사는 50대에 일본 유학을 가서 4년간 혼자 미술 공부를 하며 자신의 삶 전체를 재해석했습니다. 자발적 고립을 통해 실존적 자아와 부딪히는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휴식(休息)은 나무에 기대어(休)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息)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노는 것은 잘하지만 휴식은 못합니다. 맥락을 바꾸고, 주체적 관점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의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사용자는 이 주장이 과격하지만 잠든 감각을 깨우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재미와 플로우를 강조하는 접근은 돈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공허를 정확히 지적합니다. 다만 생계 압박, 계급, 교육 격차 같은 현실적 조건을 간과한다는 비판도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삶이 창조를 억압한다는 통찰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으며, 개인이 실천 가능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창조는 특별한 사람만의 능력이 아닙니다. 시각적 사고를 훈련하고, 편집의 기술을 익히며, 재미와 플로우를 추구하면 누구나 창조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김정은 박사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돈이 아닌 관점을, 안정이 아닌 변화를, 경쟁이 아닌 재미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사용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 주장은 다소 단정적이고 현실의 복잡성을 모두 담지 못할 수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익숙한 사고의 틀을 깨뜨리는 힘이 있습니다. 창조적 삶은 먼 곳에 있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나의 맥락을 재해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2OQncaacULI